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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대한암협회 집행이사 이시다. 어떤 인연으로 맡게 되셨나
나는 간암 환자였다. 당시 나의 주치의가 세브란스 교수님이셨는데 암협회 부회장님과 인연이 되어서 6년 전부터 대한암협 회의 집행이사로서 일을 하고 있다. 대한암협회의 대외적인 부분을 담당하고 있고, 전국을 다니면서 암을 극복한 사례를 들어서 강연도 많이 다녔다.
지난 2004년 간이식 수술을 받으셨다고 했다. 당시 상황을 조금 기억해주신다면
평소에 B형 간염을 오래 앓았고 오랜 시간에 걸쳐 간경화까지 진행되었다. 2002년에 정기검진 중에 간에서 2-3개의 암세 포가 발견되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크기가 작아서 고주파열로 치료를 해서 제거를 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괜찮겠지'라고 스스로 마음을 달래고 일주일 만에 다시 방송에 복귀해서 주변에서 아무도 몰랐다. 그리고 6개월마다 한번 씩 검사를 받았고, 2004년에 다시 암이 발견되었다. 처음 암을 발견하고 수술한 이후 매회 검진을 받을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살았다. 언제 재발될지 모른다는 압박감을 많이 받았었던 것 같다. 결국 다시 재발 했고, 발견된 종양은 좌엽과 우엽에 하나씩 자리했다. 어떤 수술을 받아야 하느냐가 굉장히 고민이 되었던 시기였다.
간암 진단에 대한 수술 방식 때문에도 많이 고민하셨다고 들었다. 결국 간이식을 받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나
암이 다시 생겼을 때는 정말 하늘이 무너 진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언제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정말 있었다. 그런데 내 경우는 좌엽과 우엽 양측에 암종양이 있었기 때문에 잘라내도 두 군데를 잘라야 했기 때문에 살 확률이 반반 정도였다. 절제를 권하는 의사도 있었고, 이식을 권하는 의사도 있었다. 그래서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도 많이 방황했고 주변 사람들에게 많이 물어봤다. 의사들도 각각 다른 주장을 했는데 간 부분 절제술을 권한 의사는 간 이식 수술의 위험성을 걱정했다.
위험한 수술보다 안전한 수술을 시도해보고 간의 상태를 보고 이식 여부를 결정하 자는 의견이었다. 간이식을 주장하신 분은 두 번 수술을 하는 것보다 과감하게 간 이식을 하자고 말씀하셨다. 고민 끝에 가장 교과서적인 방식을 따르라는 딸의 조언을 듣고 간이식을 결정했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간 이식도 쉽지 않은 상태였다. 도너를 구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과 많이 상의한 후 중국의 큰 병원으로 건너가서 간이식 수술을 받기로 최종 결정하고 중국으로 갔다.
중국병원으로 가실 때 마음과 당시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유서를 따로 써놓지는 않았지만 아이들에게 유언하는 심정으로 얘기했다. 혹시 내가 가서 돌아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간이식이 성공적으로 시간 내에 진행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내와 아들과 함께 중국병원으로 갔다. 거기서 한달 정도 머물렀는데 그 사이 너무 답답해서 병원 몰래 빠져나가서 만리장성을 보고 온적도 있었다(웃음). 물론 병원에서 펄쩍 뛰었고, 다시는 외부 출입을 하지 않고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고 한국으로 돌아 왔다. 벌써 그때가 12년이 지난 것 같다.
오래전의 일이지만 매우 힘든 과정을 거치셨던 것같다 .
물론이다. 암 중에서도 간암이식은 굉장히 어려운 것이다. 도너가 있어야 살 수 있는 병이고 또 수술도 성공적으로 잘 맞아야 하는 점도 있다. 죽을지 살지 매일 정신이 하나도 없었던 시간을 보냈다. 그 시간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족들과 주변 분들이 많은 배려를 해주었고 내가 최고의 환경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해준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건강을 완전히 찾으셨다. 암 진단을 받기 전과 후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아마 막연한 두려움인 것 같다. 암 진단을 받기 전에 암은 무조건 죽는 병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데 막상 진단을 받고 나니까 내가 어떻게 극복해야 살 수 있는가에 대해 미칠 듯이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선택을 하고 그 선택이 성공적이면 살 수있는 병 또한 암이다. 나는 단계적으로 암으로 진행되어 왔고, 최종 암 판정을 받기 까지 20년간의 세월 동안 증상이 조금씩 있었으나 건강을 별로 돌보지 않았다. 그러다가 외국에 4년 동안 나가있는 동안 제대로 건강검진을 받지 못해서 한국으로 들어온 뒤로는 6개월에 한번씩 꾸준히 건강 검진을 받았던 것이 내가 살 수 있도록 해준 것 같다. 결국 그 과정에서 암을 발견하 고, 그래도 남들 보다 빠른 발견을 했기 때문에 살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다.
간이식을 결정하시는 과정에서 많은 의사들을 만나고 의견을 구했다. 어떤 생각이 드셨나
당시 나는 많은 분들을 만나서 의견을 들었는데 정말 잘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른바 이차 소견의 중요성을 마음과 몸으로 체득한 시기였다. 당시 주변분들이 의사들을 많이 만나보고 결정하라고 조언했 다. 나와 잘 맞는 의사를 만나는 것도 치료에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상태를 조금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고, 이겨낼 수 있는 최적의 치료 방식을 찾을수 있었던 것 같다.
암 치료를 받은 후 이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중국에서 치료를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운동을 열심히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스스로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오히려 모처럼 찾아온 시간적인 여유를 즐겼다. 암 치료후 1년이 지난 후 바로 방송활동을 할수 있었던 것도 당시 내 자신을 믿고 몸을 관리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병원도 꾸준히 다니고, 과식이나 외식을 삼가고 건강식도 먹으면서 건강을 챙겼다.
굉장히 긍정적인 마인드로 암을 이겨내신 것 같다.
비결을 소개하신다면
내가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된 것은 ‘스스로 자책을 멈추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도 매우 불안했고, 우울하고 무서웠다. 그리고 스스로 화도 많이 났고 몸관리를 잘 못해서 이런 큰 병을 얻었다는 생각도 많이 했다. 하지만 생각을 달리했다.
암은 누구가 걸릴 수 있는 병이라는 것. 그리고 특별히 건강을 챙기지는 못했어도 또특별하게 몸을 혹사하거나 하지 않았던 나에 대해 조금더 객관화하고 암을 극복하기 위한 질병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었다.
인터뷰를 읽는 <더 캔서>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암은 누구나 걸릴 수 있는 병이라는 말을 다시하고 싶다. 암은 감기에 걸리면 콧물이 나는 것처럼 몸에 싸인이 쉽게 오지 않 는다. 오랜 시간 누적이 되어서 나중에야 나타나는 병이다. 내 경우는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았던 것이 나를 살 수 있게 해주 었고, 암을 조기에 발견해서 적절한 대처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을 보시는 독자분들 중에 암 환자가 아닌 일반인들이라면 암에 관해 다른 사람의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우리 누구도 걸릴수 있는 질병이라고 생각하여 건강검진을 꾸준히 받으면서 대처를 해야 한다고 생각 한다.
그리고 암환자들에게도 말하고 싶다. 긍정의 힘을 믿고 암을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도 있는 병이 암이다. 이제는 많이 발달해서 유전적인 요소나 다른 분야로 충분히 예방을 할 수있다고 들었다. 꾸준히 자신의 몸에 관심과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암을 이겨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