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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러브레티 | 2016년 09호
행복한나눔재단 고은아 대표
우리문화와 영화계의 밑거름이 되었던 중견배우로 한국 영화사에 강한 발자취를 남긴 여배우이자 서울극장 대표, 그리고 행복한나눔재단 이사장, 대한암협회의 부회장을 역임하고 있는 고은아 대표를 <더 캔서>가 인터뷰 했다.
김영지 기자 | 2016-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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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나눔 활동이 삶에 즐거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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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암협회의 부회장을 맡고 계신다. 어떤 인연으로 시작하시게 되었나
대한암협회의 역대 회장님들과 인연이 많았다. 행복한나눔재단 이사장을 맡고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고, 또 학연이나 인맥으로도 많이 알게 되었다. 특히 노동영 회장님과 인연이 많은데 간곡히 요청하셔서 흔쾌하게 맡게 되었다. 

2003년부터 행복한나눔재단 이사장을 맡아오고 계신다. 당시 제안을 받아들인 이유는
당시를 기억하면 제주도에 골프 치러 갔다가 평소 알고 지낸 기아대책본부에서 행복한나눔재단 이사장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해왔다. 기아대책본부는 기독교 방송을 하면서 인연을 맺었는데 처음에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서 거절을 했다. 나보다 현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사람들이 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제안을 주셨고, 또 소명의식을 가지고 심각하게 기도 해봐달라고 말씀하셔서 고민하다가 시작하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쓰지 않은 물건들이 있다면 함께 나누는 활동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 힘을 내었다. 

행복한나눔재단 이사장을 맡고 계신 지난 10년이 넘는 시간의 소감을 말씀해주신다면
처음의 이름은 생명 창고였다. 그러데 헌혈기관같은 느낌을 주어서 행복한나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나누는 것에 대해 지금은 많은 사람들이 공감대가 좋아졌지만 예전에는 사람들이 좀 큰 것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작용에서 쉽지 않았다. 솔직히 사회적인 기업이나 단체는 힘들지 않은가. 그래서 처음의 취지는 안쓰는 재활용품을 기증 받아서 그것을 저렴하게 판매하고 그 수익금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돕는 것이다. 특히 개인들의 재활용품 뿐 아니라 기업체들이 창고 정리를 하거나 호텔 등에서 할 때는 정말 좋은 물건들도 많아서 재활용 판매가 손쉽다. 극장 앞에서도 소규모로 판매하고 있고 주로 교회에서 많이 판매하고 있다. 로드샵도 있지만 수익을 내기 까지는 도네이션 물건을 많이 확보해야 하는 등의 어려움이 있다. 

국내 뿐 아니라 해외 활동도 병행하신다고 들었다.
처음에는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도 관심을 가졌는데 물건이 확보가되어도 운송료를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해외는 중단하고 있다. 다만 공정무역 커피를 들여와서 인터넷이나 홈쇼핑을 통해 판매해서 수익을 남기고 있다. 커피 생산 자체가 어린아이들의 노동력 착취라는 측면에서 이를 해소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현지의 한 지역을 선택해서 제대로 지원하고 그것을 수입해서 국내에서 볶아서 직접 판매하는 시스템이다. 

사회적인 의미의 재단으로 오랜 시간 잘 유지해오고 있는 비결이 있다면
기본적으로 행복한나눔재단은 기아대책본부라는 큰 틀 안에 있는 조직이다. 해외활동을 할 수 있는 것도 기아대책이 국제기구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전도사님들이 있기 때문에 한때는 북한에도 나눔 활동을 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SK그룹 등에서 지원을 받고 있다. 지난 10년동안 매회 큰 바자회를 개최하여 SK 전 임원진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그 수익금 전액을 저희한테 지원한다. 그날은 이벤트 행사로 커피나 붕어빵, 고구마, 떡복기 같은 음식들도 내놓는데 모두 수익원이 된다. 조직이 크기 때문에 스탭들이 모두 자원 봉사만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수익을 맞춰가면서 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나눔 활동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하는 부분들이 있다.

이런 나눔 활동을 많이 하시다 보면 개인적으로 소명의식이나 철학이 생길 것 같다
기본적으로 큰 구제나 큰 나눔 사업은 기업에서 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은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나눔재단이 큰 기업이 하듯이 활동을 하면 빨리 좌절하게 된다. 기업이나 개인이 안 쓰는 물건을 주시면 그것을 저렴하게 팔고 수익을 남겨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 그 자체에 의미를 두는 것이고 많은 분들이 연락을 주시는 것이다.


행복한나눔재단 활동은 일반인들의 나눔 활동을 실제로 할 수 있는 창구역할도 하시는 것 같다.
물론이다. 저희의 나눔 활동에 참여하시는 것만으로도 실제로 나눔활동을 하시는 것과 같다.
그동안은 로드샵보다는 교회와 연계를 많이 해서 활동했지만 지역에 따라 성공적인 로드샵이 있다. 그리고 많은 자원봉사자들이 요일별로 도와주는데 그렇지 않고는 인력을 충당하기가 쉽지 않다. 

일반적으로 나눔이라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사실 부담감을 가질 수 있다. 여기에 대해서 조언을 해주신다면
예를 들어 연예인들에게 물건을 기증해달라고 요청하면 부담스러워 할 때가 많다. 간단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좋은 것을 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눔 활동은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다. 쓸 수는 있으나 내가 안쓰는 물건을 내놓는다면 누군가가 싸게 사서 활용할 수 있고, 그 수익금은 어려운 사람들에게 돌아간다. 쉽게 생각하면 좋겠다. 언젠가 나도 기업에서 기부한 의류 중에 코트를 3만원에 사서 잘 입었던 적도 있다. 사람들이 기준을 너무 크게 생각하면 나눔 활동하기가 어렵다. 물론 나눔이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니다. 우리만 해도 몇십명의 스탭을 운영하려면 바자회도 열심히 해야하고 아침부터 나가서 물건을 열심히 팔아야 하고 도네이션 활동을 펼쳐야 한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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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시간 서울극장 대표로 계신다. 극장 운영은 어떠신가
1990년부터 시작했다. 오랜 시간동안 영화관련 산업이 바뀌고 모든 시장이 다 바뀌었다. 열심히 하고 있는데 근처에 큰 영화관들이 들어오면 작은 자본을 가진 업체들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가지고 있다. 언론에서 영화가 천만이 들었다고 하지만 그것은 영화관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다. 전국 극장에서 본 숫자가 천만이 아닌가. 실제로 부대수익을 내는 것도 쉽지않고 요즘에 뭐든지 전산화가 되는 수수료 시대이다. 그것도 영화관이 어려움에 봉착할 수밖에 없게하는 요인 중의 하나이다.


예전이 더 좋았던 것 같다. 영화관에 대한 사람들의 생각이나 라이프가 많이 바뀐 것 같다.
물론이다. 예전에는 영화관에 오는 재미가 있었다. 재미있는 영화를 보기위해 아침부터 줄을 서면서 기다리고 그 와중에 음식을 먹거나 놀거나 하면서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낸다. 지금은 사람들이 영화관에서 머무는 시간이 너무 짧다. 모두 예매를 하고 오고 영화만 보고 가기 바쁘기 때문에 문화생활임에는 여전하지만 예전과 같은 낭만은 없는 것 같다. 

대한암협회 활동이나 암환자들을 위한 활동을 따로 하시는 것 들이 있으신지요.
노동영 교수님이 저희 딸의 주치의였다. 그래서 암협회 활동은 물론 핑크리본 캠페인 마라톤도 참가해서 여러 번 완주를 한 적도 있다. 그리고 노동영 교수님 소개로 유방암 환우회인 비너스 회원들 중 지방에서 오시는 분들이 치료받다가 시간이 있을 때 영화를 보고 가시는 경우가 있는데 가끔 작은 선물을 보내주시기도 한다(웃음). 

여배우이자 극장주이면서, 나눔 운동, 그리고 암환자들을 위한 활동까지 하신다. 연예계 활동하신 분 중에는 없었던 것 같다.
잘 모르겠지만 없는 것 같다. 원래 내가 원한 삶은 아니었지만 돌이켜 보면 자연스럽게 해왔던 것 같다. 어쩌면 나에게 주어진 소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학생이든, 여배우이든, 그리고 결혼하고 사회적 기업을 하더라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세상속에서 신뢰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있어야 사람들의 관계와 믿음이 성립 되고 좋은 일들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될 수 있다. 내가 대단한 철학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워낙 어려서부터 배운 것이라서 지금까지 그 철칙을 가지고 살아오고 있다.

대한암협회에서 <더 캔서> 매거진을 창간했다. 독자들에게 조언을 말씀해주신다면
이 매거진을 보시는 많은 암 환자들은 우선 반가울 것이다. 나도 암 환자의 가족도 해봤고, 남편과 딸이 암 진단을 받아서 뒷바라지도 했었다. 경험 속에서 느낀 것은 무조건 예방이 제일 우선이고 끊임없이 자기 몸을 진단하고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남편의 경우는 건강 검진을 하다가 발견되어 알았고, 딸은 외국에서 공부하는 중에 알게 되었다. 두명의 암 환자를 겪으면서 정말 절망이라는 것도 느낀 적도 있고, 또 한편으로 극복해가면서 희망을 느껴보기도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치의 선생님 말씀을 믿고 무조건 소통하고 나을 수 있는 방향을 모색했다.

어떤 경우라도 희망의 끈을 놓으면 안된다. 우리 모두 암 질환을 가지고 있지만 발견되지 않을 뿐이고 잠정적인 환자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만큼 암은 예측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다. 정기적인 검진을 꼭 하고 의술을 믿고 희망을 잃지 말고 치료해 나갔으면 좋겠다.

딸의 경우 독일에서 공부를 하고 왔다가 1차 항암 기간이 끝나고 나서 다시 공부하러 가라고 했다. 평상시 그대로 하는 것이 아무것도 안하고 기다리는 것보다 나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매우 힘든 일이지만 일상을 견디면서 그것을 스스로 극복해나가는 성취감도 있었다. 어차피 건너가야 하는 다리가 있다면 내가 울면서 가거나 한숨을 쉬면서 가거나 웃으면서 갈것이냐를 선택하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현명한 판단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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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암매거진 2016년 0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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